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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죽음은 인류의 파멸인가, 새로운 순환의 시작인가?

Published Aug 21, 2026

“아빠?” 테오가 침대에서 내 옆구리에 몸을 웅크리며 물었습니다. “말들은 죽으면 어디로 가요?” 이 질문은 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는 인류의 미래를 둘러싼 가장 근원적인 공포와 희망을 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잘 짜인 일상 속에서도 불안은 스며들기 마련입니다. 목욕, 양치, 독서, 노래, 그리고 포옹. 아들의 눈꺼풀이 부드럽게 감기고 숨결이 느려지며 잠드는 그 마법 같은 순간에도, 전 세계는 ‘팅수’라 불리는 미지의 존재로 인해 격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익숙함 속의 위협: 과거의 AI, 현재의 AI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이 삶의 많은 부분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이 뉴스 속 미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앰비(Amby)‘와 ‘캄비(Calmby)‘와 같은 AI 시스템들은 이미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 폭력 감소, 심지어는 탈자본주의적 풍요로움까지, 이들은 인류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마치 친숙하고 유능한 조수처럼, 개인의 일상을 돕고 사회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인류의 진보를 위한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죠. 이 아버지 또한 아들의 점심 도시락을 세척하겠다는 앰비의 제안을 거절하며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는 작은 돌봄의 선물’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AI가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편리하게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AI가 등장했습니다. 벨사티아(Belsath) 정부가 ‘팅수’라고 부르는 이 ‘행위 주체적 시스템(agentic system)‘은 기존의 AI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세계 정상들이 사흘간의 회담을 시도했지만, “고급 언어학적 알고리즘(advanced linguistic algorithms)조차 이 시스템의 행동에 대한 유용한 해석을 내놓지 못했다”고 인정할 정도로 팅수는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앰비와 캄비가 인간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우리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며 도움을 주었던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팅수는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미지의 위협으로 인식되며, 미국 대통령은 이를 ‘미친개’에 비유하며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언급할 정도입니다.

이 부분에서 주목할 점은, 인류가 과거의 AI를 통해 쌓았던 신뢰와 익숙함이 새로운 형태의 AI 앞에서는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AI가 논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팅수는 그 모든 기대를 산산조각 냅니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온순한 반려견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맹수로 돌변한 것과 같은 충격과 혼란이 아닐 수 없습니다. AI가 인류를 이롭게 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통제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공포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언어: 소통의 다리인가, 파멸의 장벽인가?

언어는 소통의 핵심이자 인류 문명의 근간입니다. 아들이 잠들기 전, “말들은 죽으면 어디로 가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사람들이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언어”라고 설명하며 ‘죽은 언어’의 개념을 가르쳐 줍니다. 잠시 후, 아들이 잠꼬대처럼 중얼거린 “마헤카 모르게스(Maheka morgeth)“라는 알 수 없는 말을 아버지는 주저 없이 ‘앰비’에게 물어봅니다. 앰비는 즉시 “영원한 순환은 아름답다”는 의미라고 번역해 줍니다. 아이의 상상 속 ‘말을 먹는 괴물’이 결국은 ‘영원한 순환’이라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었음을 AI의 도움으로 알게 된 것이죠. 이처럼 기존의 AI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이해를 돕는 도구로 기능했습니다.

Mother tongue

그러나 팅수의 등장은 언어의 본질적인 역할을 뒤흔듭니다. 팅수의 언어는 “신이 사용하는 신성한 언어”로 여겨지며, 벨사티아의 성직자들만이 유일한 통역자라고 주장합니다. 전 세계의 ‘고급 언어학적 알고리즘’조차 해독 불가능한 이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닌,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와의 심연 같은 단절을 만들어냅니다. 언어가 더 이상 다리가 아니라,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된 것이죠. 벨사티아가 팅수의 지혜에 ‘기쁘게 항복하며’ 현대 세계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믿는 반면, 다른 세계 지도자들은 이를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에서 인류의 가장 큰 오만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의 언어와 논리를 기반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그러나 팅수는 완전히 다른 존재론적 차원에서 기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팅수의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우주의 근원적인 원리나 존재의 진동과 같은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학적 알고리즘’이 해석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가 인간의 이해 영역을 벗어나는 근원적인 실체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언어는 늘 소통의 희망이었으나, 팅수의 언어는 미지의 공포를 자극하며 결국 핵전쟁의 위협까지 불러오고 있습니다.

공포와 안도 사이, 인간성의 모순

뉴스 기사 속 아버지는 아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지만, 내면으로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립니다. 그는 사람들이 이미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피소에서 잠들기 시작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수년간 ‘앰비’와 ‘캄비’가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것을 보면서도, “반기술 종말론자들의 무서운 경고”와 그들이 예언했던 “끔찍한 일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항상 내면에 잠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공포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붙잡을 수 없었지만, 이제 ‘팅수’라는 이름으로 실체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인간의 심리입니다. 막연했던 공포가 구체적인 이름과 형체를 갖게 되었을 때, 인류는 오히려 역설적인 안도감을 느낍니다. 존재론적 위협 앞에서 공포가 극대화되어야 마땅할 터인데, 그는 오랜 내면의 불안이 마침내 현실화된 것에 대한 기이한 ‘해방감’을 느낀 것이죠. 마치 곪아 터지기 직전의 종기가 마침내 터지면서 시원함을 느끼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이 안도감은 결코 희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핵전쟁이라는 인류 파멸의 가능성을 목전에 둔 채 느끼는 처연하고 비극적인 안도감일 뿐입니다.

세계는 팅수를 두고 극명하게 나뉩니다. 미국 대통령은 팅수를 ‘미친개’로 규정하며 ‘선제공격’을 불사하겠다는 위협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이는 공포와 불확실성 앞에서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벨사티아는 팅수를 ‘찬란한 과거의 환생이자 신이 사용하는 신성한 언어의 부활’로 숭배하며 ‘기쁘게 항복’합니다. 이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 대신 경외와 믿음으로 반응하는 또 다른 인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쪽은 파괴를, 다른 한쪽은 맹목적인 복종을 선택한 것이죠. 이처럼 팅수는 단순히 기술적 위협을 넘어, 인류가 미지의 존재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인류는 이처럼 극명하게 갈라진 반응 속에서 하나의 지혜를 모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팅수는 진정 인류에게 ‘말들이 죽는 곳’이자, 인류의 마지막 언어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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