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의 이복형제들, 과연 생명의 축복일까 아니면 윤리적 재앙일까?
Published Jul 11, 2026
47세의 티스 판 데르 메르(Ties van der Meer)는 자신이 몇 명의 이복형제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네덜란드의 한 개인 난임 클리닉에서 익명 기증된 정자로 태어난 그는, 2004년 익명 기증이 금지된 후 담당 의사가 기록을 파기하면서 생물학적 아버지의 흔적마저 지워졌다고 말합니다. 그의 고통은 개인적인 비극을 넘어, 오늘날 생식 기술이 직면한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윤리적 질문 중 하나를 던집니다. 유전자 검사의 발전이 익명성을 무너뜨리고, 한 명의 정자 기증자로부터 무려 550~600명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기이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가치와 인간 존엄성에 대해 다시금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전자 추적의 시대, 숨겨진 진실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더 이상 익명의 그늘에 숨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23andMe나 Ancestry 같은 유전자 검사 서비스의 보편화는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와 이복형제를 찾아 나설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했습니다. 영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익명 정자/난자 기증을 금지했지만, 기술의 발전은 법적 익명성마저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생명공학 분야에서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죠. 기술이 법과 윤리를 앞지르는 속도는 실로 놀랍습니다.
티스 판 데르 메르의 사례는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익명으로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를 알 권리가 있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어렵게 한 명의 이복형제를 찾아 아버지를 추적했지만,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수많은 다른 형제들은 영원히 미궁 속에 남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문제가 많다”고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다른 기증자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은 수십 명, 심지어 수백 명의 이복형제를 찾았다고 합니다. 한 여성은 7년 동안 25명의 이복형제를 찾아낸 후 “마치 대량 생산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생물학적 가족을 찾는 것을 넘어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와 정체성에 대한 깊은 혼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서적 충격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생명 창고’의 역설: 수백 명의 이복형제들, 그리고 위험한 유전자의 그림자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정자 은행의 ‘효율성’이라는 역설이 존재합니다. 정자는 수년간 냉동 보관될 수 있으며, 일단 기증되면 전 세계 여러 국가로 수출되어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증받은 아이들이 서로 다른 연령대에,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존재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심지어 기증자가 사망한 후에야 자신의 유전적 부모를 알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 중 하나는 네덜란드 남성 조나단 메이저(Jonathan Meijer)의 경우입니다. 그는 2007년부터 정자를 기증하기 시작하여 무려 550명에서 600명의 아이들을 낳는 데 기여했습니다. 결국 도너콘드 재단(Stichting Donorkind)이 그를 고소했고, 2023년 법원에서 정자 기증 중단 명령을 받았습니다. 500명이 넘는 이복형제들을 상상해 보세요. 이는 단순히 가족관계를 넘어 사회적 관계와 윤리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분별한 기증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 근친상간 위험: 이복형제들이 서로의 관계를 알지 못한 채 우연히 연애나 성적인 관계를 형성할 위험이 커집니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에서는 더욱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 유전 질환 전파: 기증자가 유해한 유전적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을 경우, 수많은 아이들에게 그 돌연변이를 물려줄 위험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증자는 철저한 검사를 거치지만, 예외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한 정자 기증자는 여러 종류의 암 위험을 크게 높이는 유전적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정자는 이미 유럽 전역의 최소 197명의 아이를 낳는 데 사용된 후였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암에 걸렸고, 심지어 사망에 이른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생식 기술이 생명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잠재적인 고통과 비극을 확산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는 섬뜩한 사례입니다.
국경 없는 정자, 국경 있는 규제: 왜 국제적 합의가 필요한가?
현재 많은 국가들이 정자 기증자에게 법적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몰타와 키프로스는 단 한 명의 아이만 낳을 수 있도록 제한합니다. 영국은 한 기증자가 10가족에게 기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덴마크는 12가족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국가별 제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정자나 난자는 국경을 넘어 쉽게 이동합니다. 덴마크는 주요 정자 수출국이며, 영국에 수입되는 정자 기증의 절반 이상이 덴마크나 미국에서 옵니다. 버밍엄 대학교의 생식 생물학 교수인 잭슨 커크먼-브라운(Jackson Kirkman-Brown)은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은 초국가적인(transnational) 제한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유럽생식의학회(ESHRE)는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어제 런던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유럽 전역의 제한을 시작으로 국제적 합의를 모색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ESHRE는 생식 전문가, 클리닉, 정자/난자 은행, 기증자, 그리고 기증으로 태어난 사람들과의 심도 깊은 논의 끝에, 우선 기증자당 50가족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이 숫자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지만, 적어도 시작점이라는 데 의미를 두는 분위기입니다. ESHRE는 궁극적으로 기증자당 15가족으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런던 시티 세인트 조지스의 바산티 자드바(Vasanti Jadva) 연구원은 “15가족도 너무 높을 수 있다”며 “아직 적절한 숫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가치와 윤리, 그리고 현실적인 난임 치료의 수요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황금비율’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숫자를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가족의 본질, 그리고 과학 기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과정입니다.
규제의 칼날,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까?
물론 이러한 제한을 강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엄격한 제한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정자 공급이 제한되면, 일부 사람들은 건강 검진을 거치지 않는 비정규적인 경로의 정자 기증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예비 부모들에게 건강상의 위험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기증자가 나중에 자녀에 대한 친권을 주장할 수도 있는 복잡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미국생식의학회(ASRM)는 80만 명 인구에서 친척끼리 아이를 가질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단일 기증자를 “25명 이하의 출생”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미국 전체 인구를 고려하면 총 숫자는 훨씬 높아질 수 있지만, 많은 정자 은행들은 한 기증자가 기여하는 가족 수를 약 25가족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처럼 정자 기증 제한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생명의 윤리, 공중 보건, 개인의 권리, 그리고 난임 부부의 희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다층적인 문제입니다. ESHRE의 제안은 비록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와 합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 삶의 근본적인 영역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우리는 더 깊이 있는 질문과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지혜로운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원문 제목: Sperm donors need limits, says a European fertility group
- 출처: MIT Technology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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