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AI 시장, SAP의 1조 원 승부수: 통제냐 개방이냐, 거인의 길은?
Published May 6, 2026
“우리는 아직 AI가 기업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제대로 침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2월 오픈AI COO의 이 발언은 기업용 AI 시장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충격적인 고백이었습니다. 특히 2026년 이른바 ‘SaaSpocalypse’ 여파로 주가가 크게 하락했던 기업 소프트웨어 거인 SAP에게는 이 문제가 더욱 절박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SAP는 마냥 좌시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규모 투자와 함께 대담하면서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꺼내 들며 엔터프라이즈 AI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거인의 대담한 승부수: Prior Labs 인수와 1조 원 투자
유럽의 거물 SAP는 지난 월요일, 독일 AI 스타트업 Prior Labs를 인수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구체적인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창업자들에게만 수억 달러의 현금이 지급될 정도로 ‘매우 건강한 출구(healthy exit)‘였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SAP가 규제 승인 후 향후 4년간 Prior Labs에 **10억 유로 (약 1조 1600억 원)**를 투자하여, 이를 구조화된 데이터에 집중하는 AI 연구소로 성장시킬 계획이라는 점입니다. 구조화된 데이터란 기업 정보가 일반적으로 저장되는 표와 데이터베이스를 의미합니다.
불과 18개월 전 Frank Hutter, Noah Hollmann, Sauraj Gambhir 세 명의 공동 창업자가 설립한 Prior Labs는 테이블형 파운데이션 모델(Tabular Foundation Models, TFMs), 즉 표와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하는 AI 모델 개발에 주력해왔습니다. SAP의 이번 인수는 이러한 TFMs의 잠재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됩니다. SAP의 회계, HR, 조달, 경비 관리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제품들은 본질적으로 방대한 양의 구조화된 데이터베이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Prior Labs의 기술은 SAP의 핵심 비즈니스에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투자를 단순한 M&A를 넘어선 전략적 지분 전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SAP가 자체 R&D만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최첨단 AI 기술을 단숨에 확보하고, 이를 통해 자사 생태계의 AI 전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LLM vs. TFM: 기업 AI의 숨겨진 보석, 구조화된 데이터
최근 몇 년간 AI 시장은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s, LLMs)의 열풍으로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SAP는 일찍이 다른 관점을 제시해왔습니다. SAP CTO Philipp Herzig은 성명에서 “기업 AI에서 가장 큰 미개척 기회는 거대 언어 모델이 아니라, 전 세계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구조화된 데이터를 위한 AI였다”고 단언했습니다. 이러한 SAP의 비전은 Prior Labs의 인수로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 LLM (거대 언어 모델): 텍스트 생성, 요약, 번역 등 비정형 데이터 처리에 강점. 대중적 관심과 혁신 속도가 빠르지만, 특정 기업 데이터에 대한 ‘환각’ 문제나 학습 비용 등의 한계가 존재.
- TFM (테이블형 파운데이션 모델): 표, 데이터베이스 등 구조화된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하고 예측하는 데 특화. 기업의 재무, 고객, 공급망 데이터 등 핵심 비즈니스 정보가 대부분 구조화된 형태로 존재하므로, 실제 비즈니스 가치 창출에 직결될 가능성이 높음.
SAP는 2023년 오픈AI의 경쟁사인 Anthropic뿐만 아니라 Aleph Alpha, Cohere와 같은 생성형 AI 기업에도 투자하며 LLM의 가능성을 탐색해왔습니다. 또한 자체적으로 관계형 사전 학습 트랜스포머 모델인 SAP-RPT-1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Prior Labs 인수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지름길’이자, 구조화된 데이터 기반 AI에 대한 SAP의 궁극적인 베팅인 셈입니다. Prior Labs의 TabPFN 모델 시리즈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3백만 회 이상 다운로드될 정도로 이미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SAP는 Prior Labs가 독립적인 유닛으로 운영되면서 오픈소스 버전을 계속 유지하도록 지원하고, SAP AI Core, SAP Business Data Cloud 및 에이전트 레이어인 Joule을 통해 SAP 포트폴리오 전반에 걸쳐 제품화를 위한 직접적인 경로를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이는 오픈소스 생태계와의 상생을 통해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려는 전략으로도 보입니다.

개방 vs. 통제: 에이전트 AI 생태계 전쟁의 서막
한편, SAP는 AI의 또 다른 핵심 트렌드인 에이전트 AI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자체 AI 연구소를 구축하는 동시에, SAP는 자사 API를 통해 제품에 접근하는 AI 에이전트들을 명시적으로 승인하지 않은 한 **“금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즉, 오직 “SAP가 승인한 아키텍처”만을 허용한다는 방침입니다.
승인된 아키텍처에는 물론 SAP 자체 에이전트인 Joule Agents (현재 베타 버전)가 포함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엔비디아가 지난 3월, SAP의 Joule이 엔비디아의 에이전트 툴킷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툴킷은 엔비디아의 기업용, 보안 중심 OpenClaw 경쟁 모델인 NemoClaw의 기반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SAP 고객들은 NemoClaw 에이전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SAP의 접근 방식은 SaaSpocalypse의 또 다른 희생양이었던 Salesforce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Salesforce는 새로운 Headless 360 아키텍처를 통해 기업 고객들이 OpenClaw를 포함하여 원하는 에이전트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 SAP의 전략: 통제와 통합
- 장점: 엄격한 보안, 안정적인 통합, 자사 생태계 내에서의 최적화된 성능 보장. 기업 고객에게 예측 가능한 환경 제공.
- 단점: 외부 혁신 수용에 제한적, 고객의 선택권 축소, 잠재적 생태계 확장성 제약.
- Salesforce의 전략: 개방과 유연성
- 장점: 광범위한 에이전트 선택권 제공, 다양한 솔루션과의 유연한 통합, 외부 개발자 생태계 활성화.
- 단점: 보안 및 호환성 문제 발생 가능성, 복잡성 증가, 서비스 안정성 유지의 어려움.
솔직히 말해서, 이 두 거인의 상반된 전략은 향후 기업 AI 에이전트 시장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갈림길이라고 생각합니다. SAP는 기존의 강력한 기업용 소프트웨어 왕국을 지키고, 통제된 환경에서 AI를 통합하여 안정적인 가치를 제공하려는 보수적이면서도 견고한 접근 방식을 택했습니다. 반면 Salesforce는 개방성을 통해 혁신을 수용하고, 고객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려는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죠. 어떤 전략이 장기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둘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이는 각 기업의 철학과 핵심 역량을 명확히 반영하고 있으며, 엔터프라이즈 AI 시장의 진정한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신호탄이기도 합니다.
SAP에게 AI는 위협이자 기회입니다. CFO Dominik Asam이 CNBC에 밝힌 바와 같이, “SAP가 이러한 기술을 R&D 포트폴리오에 얼마나 빨리 도입하여 상대적인 규모의 경제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Prior Labs 인수를 통한 구조화된 데이터 AI 강화와 에이전트 AI에 대한 통제 전략은 바로 이러한 SAP의 고민과 해답이 담긴 결과물입니다. 독일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인 SAP의 이번 대규모 투자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급변하는 AI 시대에 기업 소프트웨어 거인이 자신의 입지를 어떻게 재정의하고 수성해 나갈 것인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될 것입니다.
출처
- 원문 제목: SAP bets $1.16B on 18-month-old German AI lab and says yes to NemoClaw
- 출처: AI News & Artificial Intelligence | TechC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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