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row_back

Article

멈춰 세상을 돌보는 일: 스튜어트 브랜드의 '유지보수' 철학, 그 빛과 그림자

Published Apr 17, 2026

최근 몇 년간, 우리는 급변하는 기술 발전만큼이나 “오래된 것”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는 흥미로운 현상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스마트폰,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최첨단 인공지능 모델 등 끊임없이 쏟아지는 신제품과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수리할 권리(Right-to-Repair)’ 운동이나 낡은 인프라의 붕괴 소식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죠. 과연 ‘새로운 것’만이 능사일까요?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을 돌보고 유지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할까요? 바로 이런 시기에, 현대 기술 문화의 기틀을 다진 전설적인 인물,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가 『Maintenance: Of Everything, Part One』이라는 신작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이 책은 “유지보수의 문명사적 중요성에 대한 포괄적인 개요”를 제공하겠다며, 우리가 잊고 지내던 가치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혁신 뒤에 가려진 ‘유지보수’의 가치

사실, 유지보수와 수리(maintenance and repair)는 2010년대 중반부터 학계에서 뜨거운 주제였습니다. 저널리즘과 기술 비평 분야에서 활동하며 저 역시 ‘The Maintainers’라는 글로벌 학제간 네트워크의 공동 창립자로서 이 움직임에 일조했기에, 브랜드가 이 주제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죠. 왜냐하면 지난 수십 년간, 기름때 묻은 도구를 닦고, 닳아버린 부품을 교체하며, 코드 베이스를 업데이트하는 등의 모든 ‘유지보수’ 작업은 대개 ‘혁신’이라는 찬란한 이름 뒤에 가려져 낮은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조직과 사회적 환경에서 유지보수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심지어 방치되기 일쑤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미국의 낡은 인프라를 한 번이라도 본다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할 겁니다.)

기업들은 더 큰 이윤을 추구하며 소비자들이 직접 수리하는 것을 막거나 제품의 수명 자체를 크게 단축시켜 왔습니다. 냉장고 문에 굳이 컴퓨터를 넣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는 결국 유지보수의 주체를 제한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구조를 만들어 온 것이죠. 브랜드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오토바이든, 기념물이든, 아니면 우리의 행성이든, 무언가를 유지보수할 책임을 지는 것은 급진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명예와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유지보수’를 단순한 행위가 아닌 ‘문명의 핵심’으로 재정의하려는 그의 시도는 분명 중요하고 시의적절합니다.

스튜어트 브랜드: 반문화에서 디지털 시대로, 그리고 ‘유지보수’로

스튜어트 브랜드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인물입니다. 1938년에 태어나 현재 87세인 그는, 단순히 기술 산업의 전설을 넘어 반문화(counterculture)와 사이버문화(cyberculture)를 잇는 주춧돌 같은 존재였습니다. 1960년대 중반, 그는 켄 케시가 이끌던 히피 공동체 ‘메리 프랭스터스(Merry Pranksters)‘의 일원이었고, 사이키델릭한 조명 쇼 속에서 그레이트풀 데드 같은 밴드들이 공연하던 ‘트립스 페스티벌(Trips Festival)‘을 공동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들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친 작업의 패러다임을 설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이름이 가장 빛나는 곳은 단연 1968년에 처음 발행된 『홀 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일 겁니다. “도구에 대한 접근(Access to tools)“이라는 모토 아래, 이 책은 퀴셋 오두막, 지오데식 돔, 태양 전지판, 우물 펌프 등 ‘오프 그리드(off-the-grid)’ 생활을 위한 다양한 기술과 정보로 가득했습니다. 이는 진보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당시의 민권 운동, 페미니즘, 환경 운동과 같은 집단적인 사회 변화 운동과는 대조되는 자유지상주의적이고 강인한 개인주의 철학에 기반한 비전이었습니다. 부패한 시스템을 회피하고 홀로 문명을 재건하려는 그의 사상은 새로운 디지털 도구의 발전, 그리고 실리콘밸리 시대의 도래로 곧장 이어졌죠.

The case for fixing everything

1985년, 그는 『홀 어스 소프트웨어 카탈로그(Whole Earth Software Catalog)』를 발행하고, 개척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WELL(Whole Earth ‘Lectronic Link)을 공동 설립하며 디지털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MIT 미디어 랩에 대한 찬양적인 책을 쓰기도 했는데, 거기서 “랩은 경제나 정치가 아닌 기술로 기술의 병폐를 치유할 것”이라고 주장했죠. 다시 말해, 집단적인 행동이나 정책 수립이 아닌 ‘도구’에 대한 믿음이 그의 핵심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값비싼 컨설팅 미래학자 집단인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Global Business Network)를 공동 설립하며 MIT, 스탠퍼드, 실리콘밸리와의 연결 고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현대 디지털 혁명을 도래시키는 데 일조한 인물인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그의 관심은 혁신을 넘어 그 ‘유지보수’로 향합니다. 1994년 저서 『건물은 어떻게 배우는가(How Buildings Learn: What Happens After They’re Built)』에서 그는 건물이 결국 재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거주자들이 쉽게 용도를 변경할 수 있는 저렴하고 단순한 구조를 선호했습니다. 이는 『홀 어스 카탈로그』의 ‘자유로운(혹은 자유지상주의적인)’ 철학을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이 도구에 접근할 수 있다면 그들 스스로 세상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 말이죠. “유지보수의 로맨스(The Romance of Maintenance)“라는 장에서는 모든 종류의 ‘수리해야 할 것들(fixer-uppers)‘에서 아름다움과 가치, 그리고 때때로 즐거움까지 찾아볼 것을 권했습니다.

과연 ‘유지보수’는 개인적인 성공인가, 공유된 세상의 책임인가?

스튜어트 브랜드의 새로운 책은 이처럼 긴 여정을 거쳐 ‘유지보수’라는 주제에 당도한 그의 사유의 결정체입니다. 부식, 녹, 부패와의 싸움, 그리고 불가피하게 쇠퇴할지라도 모든 것을 계속 유지하려는 시도 속에서, 그의 책에는 삶을 되돌아보고 그 끝을 숙고하는 한 노년의 시선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Maintenance: Of Everything』은 그의 삶의 모든 단계와 연결되어 있죠.

하지만 이 책을 접한 ‘The Maintainers’ 공동 창립자의 평가는 미묘합니다. 그는 브랜드가 유지보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답을 완전히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브랜드가 그리는 유지보수의 모습이 **“개인적인 성공과 성취에 더 가깝고, 공유된 세상을 돌보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은 주목할 만합니다. 초기 저서에서 유지보수에 대한 통찰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작에서는 그 관점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그의 일관된 철학이 다시금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반문화 운동 시절부터 디지털 혁명에 이르기까지, 스튜어트 브랜드의 핵심적인 사상은 언제나 **‘도구’를 통한 ‘개인의 역량 강화’**에 있었습니다. 그는 집단적인 행동이나 정치, 경제적 시스템 변화보다는, 개인이 도구를 가지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재구성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었죠. 87세의 나이에 쇠퇴와 싸우는 유지보수를 논하는 그의 시선은, 마치 한 개인이 유한한 삶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와 주변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분명 유지보수의 중요한 한 측면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물건, 주변 환경, 나아가 신체를 돌보는 행위는 분명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유지보수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거대 인프라, 복잡한 소프트웨어 시스템,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 생태계의 유지보수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집단적 책임과 제도적 접근을 요구합니다. 수리할 권리 운동 역시 단순히 개인이 수리할 ‘도구’를 갖는 것을 넘어, 기업의 정책 변화와 법적 제도 개선을 통해 시스템 전체를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스튜어트 브랜드의 새 책은 유지보수라는 주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그 중요성을 다시금 각인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개인주의적, 도구 중심적 접근이 현대 사회의 복잡한 유지보수 과제를 완전히 포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모든 것을 유지보수’하려면, 개인의 책임감을 넘어선 사회적, 제도적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의 책이 이 거대한 담론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출처

Share this story

Related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