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인가, 치료제인가? 모더나의 이름 바꾸기, 그 뒤에 숨겨진 진실
Published Apr 10, 2026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은 mRNA 기술의 잠재력을 세상에 알리는 동시에, 이 신기술에 대한 유례없는 관심과 함께 깊은 불신과 회의론을 낳았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특정 정치권과 대중 일부에서 확산된 백신 회의론은 단순히 접종률 저하를 넘어, 이제는 최첨단 의학 연구의 방향과 심지어 그 용어 정의마저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코로나19 백신으로 익숙한 모더나(Moderna)가 자사의 중요한 암 치료 기술을 ‘백신’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명명법의 변화를 넘어선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학적 정확성과 대중의 인식이 충돌하는 현 시대의 복잡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백신 회의론의 그림자: 모더나의 위기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세계적 기업으로 부상한 모더나는 역설적으로 바로 그 성공의 기반이었던 mRNA 기술 때문에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미국 연방 정부 내의 백신 회의론자들의 영향으로 차세대 독감 및 신흥 병원체 대상 mRNA 백신 개발 계획이 좌절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수장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는 mRNA 기술에 대한 지원을 대거 철회하며 모더나의 조류독감 백신 개발을 위한 7억 7,6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포함,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백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규제 환경의 변화와 계약 취소는 모더나를 궁지로 몰아넣었고, 급기야 회사는 작년 말 감염병 백신 개발 후기 임상 프로그램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내놓았습니다. 한때 인류의 희망으로 불렸던 mRNA 백신 기술이 정치적 수사 속에서 ‘위험하고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폄하되면서, 차세대 백신 개발이라는 중요한 공중 보건 목표가 위협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과학적 진실과 정치적 논쟁이 얼마나 쉽게 뒤섞여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암 치료 혁신의 재명명: ‘백신’이 아닌 ‘치료제’로
이러한 난관 속에서 모더나의 또 다른 연구 분야, 즉 암 치료를 위한 mRNA 기술 연구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모더나는 머크(Merck)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mRNA 기술을 활용한 암세포 파괴 기법을 개발 중입니다. 이 기술은 엄청나게 유망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 이름은 더 이상 ‘암 백신(cancer vaccine)‘이 아닙니다.
머크 대변인은 해당 기술을 “백신이 아니라 개별화된 신생항원 치료제(individualized neoantigen therapy)“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 작동 방식은 영락없이 백신과 매우 유사합니다. 모더나는 환자의 암세포 유전자를 분석하여 표면에 나타나는 독특한 분자(신생항원, neoantigens)를 식별합니다. 이후 이 신생항원의 유전 코드를 주사 형태로 만들어 환자에게 투여합니다. 그러면 환자의 면역 체계는 이 표면 마커를 가진 모든 세포를 공격하도록 명령받게 되는 것이죠. 기전적으로는 코로나19 백신과 유사하지만, 바이러스가 아닌 암에 대해 면역력을 유도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실제로 이 기술은 상당한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모더나와 머크는 올해 가장 치명적인 피부암 중 하나인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수술 후 재발로 인한 사망 위험을 절반으로 줄이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더나는 2023년부터 공식적인 문서나 규제 서류에서 이 기술을 더 이상 ‘암 백신’이라고 부르지 않고, 머크와 협력하면서 **개별화된 신생항원 치료제(INT)**로 브랜드를 변경했습니다. 모더나 CEO는 당시 이러한 명명 변경이 “프로그램의 목표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암 연구를 진행하는 유럽의 바이오엔테크(BioNTech) 역시 2021년 ‘신생항원 백신(neoantigen vaccine)‘에서 최근 보고서에서는 ‘mRNA 암 면역치료제(mRNA cancer immunotherapies)‘로 용어를 바꿨다는 사실입니다.
단어 게임의 윤리적 딜레마와 필자의 관점
이러한 용어 변경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환자가 이미 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방적 차원의 ‘백신’보다는 ‘치료제’라는 이름이 더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위 미국 관료들에 의해 확산된 백신 공포증으로부터 중요한 혁신 기술을 분리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모더나의 암 프로그램 책임자인 카일 홀렌(Kyle Holen)은 작년 바이오테크 행사에서 “백신이라는 단어가 요즘은 더러운 단어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학과 면역 체계를 활용하여 감염뿐만 아니라 암과도 싸울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러한 ‘단어 게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더나의 임상 시험에 환자를 참여시킨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의사 라이언 설리번(Ryan Sullivan)은 용어 변경이 임상 시험 참가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부 환자들은 백신이기 때문에 암 치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도, “이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불러야 한다고 많은 동료들이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주목할 점은, 과학적 용어의 정의와 대중의 인식이 충돌할 때, 연구의 연속성을 위해 과학적 정확성이 희생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입니다. 설리번 박사의 우려처럼, ‘백신’이라는 이름 때문에 잠재적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치료법을 거부하는 환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시에, 치료의 본질을 ‘백신’이라 부르는 것이 환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계 내부에서조차 이러한 명명법 변화에 대한 의견이 갈린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것을 넘어선 복잡한 윤리적, 커뮤니케이션적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토론토 프린세스 마거릿 암 센터의 종양학자 릴리안 시우(Lillian Siu)는 이 새로운 치료법의 안전성 테스트에 참여했으며, 미국 정치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녀는 “연구가 계속될 수 있다면” 이름 변경은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연구의 진전과 환자 접근성 확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 용어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실용적인 관점인 셈입니다. 홀렌은 모더나에 불평하는 의사들이 백신을 옹호하려는 욕구에 동기 부여되었다고 말하며, 백신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중 보건 개입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모더나는 이러한 주장을 수용하는 대신, 전략적인 길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월 발표된 모더나의 최신 연구 결과 논문에는 본문에서 ‘백신’이라는 단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오직 각주에서 오래된 논문이나 특허의 제목에만 등장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은 케네디 주니어의 전략이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의 기관들은 mRNA 백신을 대중의 우려 대상으로 만들고, 그 도달 범위를 방해하며, 기업에게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 옹호자들을 고립시키는 데 주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더나의 전략 또한 나름대로 효과를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정부가 모더나의 암 ‘백신’ — 아니, 개별화된 신생항원 치료제에 대해 그다지 할 말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 의학 기술이 단순한 과학적 성과를 넘어, 사회적 인식, 정치적 압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는 복합적인 요인들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살아남으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혁신적인 기술이 대중의 오해와 불신으로 인해 본래의 이름을 숨겨야 하는 아이러니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과 사회적 맥락이 기술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과연 미래에는 과학적 정확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소통 방식이 등장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는 계속해서 이처럼 ‘단어 게임’을 통해 기술의 진보를 이어나가야 할까요? 이 질문은 모더나만의 딜레마가 아닌, 첨단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입니다.
출처
- 원문 제목: What’s in a name? Moderna’s “vaccine” vs. “therapy” dilemma
- 출처: MIT Technology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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